메이지 시대 고사카 광산 제련소
광산과 함께 발전한 고사카마치
도와다코 호수를 사이에 두고 아키타현과 아오모리현의 경계에 위치한 고사카마치. 이곳은 광산의 역사와 함께 번영한 지역입니다. 메이지 시대 「일본 3대 광산」이라 불렸던 고사카 광산을 중심으로 근대화가 진행되었고 도시 정비가 이루어졌습니다. 고사카마치를 근대화로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은 1847년 독일에서 일본으로 초빙된 광산 겸 제광 기술자 커트 A 네토. 그는 고사카 광산에 독일식 제련법을 도입하였습니다. 또한, 고사카 광산의 발전에 공헌한 사람은 「일본 광업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시마 다카토. 일본 최초의 서양식 용광로를 완성하였고 1881년에는 고사카 광산의 은 생산량 일본 제일을 달성하였습니다. 광산의 발전과 함께 고사카마치에는 아키타현 최초의 전기 사용을 시작으로 상수도 시설, 전기 철도, 종합병원과 동북 제일의 극장 등이 차례로 정비되며 문명개화의 최첨단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현재의 고사카마치에는 광산시대에 번영을 자랑하는 역사의 흔적과 다양한 근대화 유산이 산재해 있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박물관처럼 즐길 수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 고사카 광산 사무소
일본에서 두 번째로 수력 발전소가 설치되면서
광산 안에는 국철보다도 빠른 전철이 다녔다.
상수도 시설이 정비되어 사택에는 공용 수도가 설치되었다.
고사카 광산의 역사
1861년
고사카 마을의 농민 고바야시 코사쿠, 고사카 광산, 아이나이 광산 발견. 가미고사카의 오가사와라 진자에몬 등의 협조를 얻어 광물 채굴을 진행.
1866년
오시마 다카토가 고사카 광산을 조사.
1867년
난부번으로부터 고사카 광산을 개발하란 명을 받은 오시마 다카토가 번영 고사카 광산에 부임, 본격적인 개발 계획을 세운다.
1868년
보신전쟁. 난부 세력이 아키타번으로 침입. 고사카 광산 개발은 중단.
1870년
고사카 광산의 관영 재개로 오시마 다카토가 광산의 권정으로 부임. 제련소 재개를 도모한다.
1871년
오시마 다카토, 이와쿠라 도모미의 수행원이 되어 독일 광산을 시찰, 신제련법을 알게 된다.
1873년
오시마 다카토와 교대로 독일인 기술자 커트 네토가 부임, 신제련으로의 전환에 착수.
1877년
난부 가문이 정부로부터 빌려서 고사카 광산을 경영한다.
1880년
난부 가문이 고사카 광산을 반납하고 2차 관영이 된다.
1881년
오시마 다카토에 의해 고사카 광산 오거스틴 수은법을 채택.
1884년
후지타구미 그룹에 고사카 광산과 도와다 광산을 매각.
1885년
고사카 광산, 후지타구미 그룹의 경영으로 조업 시작.
1886년
센고쿠 마코토, 고사카 광산 기장 (다음해 2대 소장)
1892년
아이나이 석회산 채굴
1893년
도와다 광산 조업 중단
1896년
고사카 광산 용수 공사 (이사고자와 강~모토야마 사이) 완성
1897년
초시 제1발전소의 송전으로 광산에 불이 켜짐
1900년
흑광 자용제련 시험에 성공하여 신제련소 대공사가 이루어짐
1901년
나나타키 지역에 연기 공해 문제가 발생
1902년
고사카 광산 흑광 자용제련 본격 조업. 고사카마치는 아시오・벳시와 함께 일본 3대 동산으로 불림
1904년
고사카 광산 갱외 전반에 전철 개통
1905년
고사카 광산 상수도 완성. 고사카 광산 사무소 준공
1907년
이 해의 고사카 광산 생산액은 일본 제일이 되어 당시 아키타현 ‘세입 결산액’의 8배 이상을 기록
1908년
현내 제일의 종합병원으로서 고사카 광산 병원 개원
1910년
고사카 광산 직원들의 복지 시설로 『고라쿠칸』이 탄생
1945년
상호를 『도와 광업 주식회사』로 변경
1959년
우치노타이에서 발견된 흑광의 새로운 광맥으로 흑광 붐이 다시 일어남
1984년
아이나이 광산, 나마리야마 광산 폐쇄
1989년
고사카 제련 주식회사로 분사 독립
1990년
우치노타이 광산이 광산 고갈로 인해 폐광 (채굴 종료)
1994년
누루카와 광산 폐광으로 지역 내 모든 광산이 폐광됨
오시마 다카토
모리오카번에서 태어남. 에도, 나가사키에서 서양학을 공부한 후 미토번의 반사로, 제철 용광로를 건설. 고사카 광산 권정으로 용광로와 영국식 분은로를 만들어 서양식 제련을 실시. 후지타구미 그룹에서 경영할 때는 고사카 광산 국장으로서 지도. 퇴임후에는 일본 광업 초대 회장으로 취임, 근대 제철의 아버지라 불린다.
커트 아돌프 네토
작센의 프라이베르크 (현 독일)에서 태어나 같은 지역에서 광업 대학을 졸업.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아 광산 야금 기술자로 고사카 광산에 부임. 아베 도모키요, 사사키 다사부로 등의 협력으로 일본 최초의 습식 제련 (은은 차포겔법, 동은 헌트 앤 더글라스법)을 실현. 이후 도쿄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광업 근대화에 기여한 공적이 크다. 또한 고사카에 부임하면서 많은 수채화를 남겼는데 1873년에 스케치한 크리스마스 파티의 모습이 현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